송강 문학기행

제5장 송강은 지금도 흐르는 데 - 송강정에서 (9)

김세곤 부서명 07.07.03 6901

송강은 지금도 흐르는 데 - 송강정에서 (9)



- <속미인곡> 해설






각시님 달이야카니와       구즌비나 되쇼서.






  을녀가 ‘차라리 죽어서 지는 달이나 되어 임 계신 방 창안에 비추겠다.’고 한숨어린 말을 하자 갑녀는 ‘각시님, 달은 그만두고 궂은비나 되소서.’ 라고 한다. 이 대목이 속미인곡의 끝이다. 단 한 구절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달이 되어 임계신데 비추고저’ 라는 말은 여러 고전문학 글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그런데 속미인곡처럼 ‘궂은비’나 되라고 하는 경우는 생소하다. 비도 그냥 ‘비[雨]’가 아니라 ‘궂은 비’라니. 왜 갑녀가 을녀에게 ‘궂은 비’나 되라고 했을까? 이는 달과 비를 비교해 보면 갑녀가 ‘궂은비’나 되라고 한 말이 훨씬 더 여인의 애절함을 표현한 말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궂은비는 달보다 훨씬 더 침울한 분위기를 만든다. 달빛이 어둠을 비추인다면, 궂은비는 어둡고 음침하다. 달빛이 넓은 공간을 비추어 준다면 궂은비는 한정된 공간에만 내린다. 이는 특정한 임에게만 사랑을 보내는 것과 같다. 또한 비는 눈물의 비유이다. 임을 그리다가 지친 나머지 흐르는 눈물이 비가 되어 임 계신 창을 두드릴 수도 있다. 이처럼 궂은비는 달빛보다 훨씬 더 애절하다.






  더 나아가서 행여나 임이 이 궂은비를 맞는다면, 궂은비가 된 여인은 임과  함께 지내는 셈이 된다. 우연하게도 나는 ‘운우(雲雨)’라는 한문을 한글로 번역하면 ‘궂은 비’라는 것을 내가 쓴 책 <남도문화의 향기에 취하여>중 고죽 최경창(1539-1583)과 기생 홍랑의 지독한 사랑 글에서 찾았다. 최경창은 정철, 백광훈과 함께 양응정 문하에서 같이 수학한 삼당시인중 한 사람이고, 홍랑은 한양으로 가는 최경창과 헤어지면서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 손에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란 시조를 고죽에게 준 함경도 홍원 기생이다. 한편 최경창은 한양에서 몸이 아파서 사경을 헤맨다. 이에 홍랑은 7일을 주야로 달려와서 고죽의 병구완을 한다. 그런데 이것이 평안도 함경도 사람이 한양에 함부로 들어 올 수 없는 양계의 도를 어겼으니. 최경창은 별수 없이 홍랑을 다시 함경도로 떠나보내면서 홍랑에게 ‘송별’이란 제목의 한시 두 수를 지어준다. 그중 한 수를 보자. 






相看脉脉贈幽蘭



此去天涯幾日還



莫唱咸關舊時曲



至今雲雨暗靑山






아쉬워 보고 또 보며 그윽한 난초 드리오니



이제 가면 머나먼 곳 어느 날에 다시 오리



함관령의 옛날 노래 다시 불러 무엇 하리.



지금은 궂은비 내려 청산이 어두워라.






  ‘지금운우암청산(至今雲雨暗靑山)’이라. 고죽의 시에도 ‘궂은비’는 어둡고 침울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운우(雲雨) 한자를 하나하나 풀어 보면 구름과 비이다. 그런데 구름과 비에 관한 중국의 고사성어 중에는 운우지정(雲雨之情)이란 말이 있다. 운우지정이란 남녀 간의 은밀한 육체적 사랑을 말한다. 요즘말로 남녀가 진하게 섹스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운우지정의 유래는 중국 초나라때 회왕이 꿈에서 나눈 신녀(神女)와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중국 태고 시대의 신농씨의 막내딸 요희는 시집갈 꽃다운 나이에 그만 세상을 떠났다. 하늘은 요희의 슬픈 운명을 위로하기 위해 그녀를 사천성의 무산(巫山)으로 보내 구름과 비를 다스리는 신녀로 만들었다. 그녀는 아침에는 한 조각 아름다운 구름(조운朝雲)이 되어 산골짜기를 어루만졌고 저녁에는 부슬비(모우暮雨)가 되어 온 세상에 내려가 가슴속의 뜨거운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런데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양왕(襄王)이 굴원의 제자 송옥과 함께 운몽(雲夢)이라는 곳에서 놀다가 고당관에 이르게 되었다. 문득 하늘을 보니 이상한 형상의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어 송옥에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송옥은 이 구름이 조운(朝雲)이며,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전국 시대, 초나라 회왕이 어느 날 고당관(高唐館)에서 노닐다가 피곤하여 낮잠을 잤습니다. 그러자 꿈속에 아름다운 신녀(神女)가 나타나 고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첩(小妾)은 무산에 사는 신녀이온데 전하께오서 고당에 납시었다는 말씀을 듣자옵고 침석(枕席:잠자리)을 받들고자 왔나이다.”






왕은 기꺼이 그 여인과 운우지정(雲雨之情: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이윽고 그 여인은 이별을 고했다 합니다.






“소첩은 앞으로도 무산 남쪽의 한 봉우리에 살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 머물러 있을 것이옵니다.”






여인이 홀연히 사라지자 왕은 꿈에서 깨어났답니다. 이튿날 아침, 왕이 무산을 바라보니 과연 꿈에서 황홀하게 같이 보낸 신녀의 말대로 높은 봉우리에는 아침 햇살에 빛나는 아름다운 구름이 걸려 있었습니다. 왕은 그곳에 사당을 세우고 조운묘(朝雲廟)라고 이름지었다 합니다.



                       



  이 고사는 초나라 시인 송옥이 지은 <고당부>에 나오는 글이다. 이 글에서 비와 구름을 다스리는 신녀와의 은밀한 사랑과 같은 남녀간의 진한 육체적 사랑을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 하고, 회왕이 무산에서 꾼 달콤하고 황홀한 꿈에서의 남녀간의 밀회나 정교를 무산지몽(巫山之夢)이라고 한다. 무산지몽과 운우지정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며, 무산지운(巫山之雲), 무산지우(巫山之雨), 운우지락(雲雨之樂),  운우지교(雲雨之交)도 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속미인곡에서 갑녀가 말한 ‘궂은비’는 무산지몽(巫山之夢)의 고사에 나오는 무산(巫山)의 모우(暮雨)를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박준규, 최한선 교수도 이런 해석을 하고 있다. 책 ‘미인곡의 산실 송강정’ 참조) 갑녀가 을녀에게 한 말 ‘차라리 궂은 비나 되소서.’는 ‘차라리 비와 구름을 다스리는 무산의 신녀처럼 꿈에서라도 임과 정을 나누소서.’ ‘저녁비(모우 暮雨)가 되어 임의 옷에 흠뻑 적시어 은밀하고 달콤한 사랑, 운우지정을 나누소서. 그래서 임으로부터 다시 사랑을 받으소서.’라고 해석하면 너무 야한 설명일까?






  <속미인곡>은 <사미인곡>이 만들어진 이후에 지어진 가사이다. 나는 속미인곡이 사미인곡 보다 훨씬 더 애절하고 진곡하며, 훨씬 더 잘 만들어진 가사라고 본다. 그 이유는 첫째 사미인곡이 한 여인의 독백체인데 반하여 속미인곡은 갑녀와 을녀의 대화체로서 한문 보다는 우리나라 말을 많이 쓰고 있고 가사도 짧아 훨씬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다. 한문을 최고로 쳐 주는 조선 사대부 사회에서 송강은 파격적으로 이런 언문 가사를 지었으니 가히 송강답다. 요즘 말로 변화와 혁신적이라고 하여야 하나. 둘째는 사미인곡이 임에게 정성을 바치는 것이 주라면 속미인곡은 자기 생활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주이다. 즉 사미인곡은 계절마다 임에게 가장 좋은 것을 정성으로 바친다. 그런데 그것은 어쩌면 상당히 사치스럽다. 이와 반면에 속미인곡은 자기의 생활이나 임의 소식을 궁금해 하는 것이 보다 진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셋째 사미인곡은 임이 곧 나를 부르리라는 자신감에서 과장이 좀 심한데  반하여 속미인곡은 임이 이제 나를 거의 버렸으리라는 초조함에서 자신을 낮춘다. 이는 어쩌면 송강의 심사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대사헌을 하고 창평에 낙향할 때는 임금이 곧 나를 부를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망송강’ 같은 시도 쓰고 사미인곡을 쓴다. 그러나 임금께서는 지난번 강원도 관찰사로 발령을 내주신 것처럼 그런 부름이 없다. 사미인곡을 써서 임에게 연군을 하였으나 임으로부터 아무 소식이 없으니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을 더욱 낮출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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