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문학기행

제5장 송강은 지금도 흐르는데 - 송강정에서 (2)

김세곤 부서명 07.03.06 4754

송강은 지금도 흐르는 데 - 송강정에서 (2)






  숙송강정사(宿松江亭舍) 한시 바로 옆에는 ‘송강을 바라보며[望松江]’란 시가 있다.






타고 가던 말 멈춰놓고 솔뿌리에 앉았으니



 맑은 송강은 바로 눈 아래에 있네.



 살아갈 은자의 계책 이미 정했으니



 연말 안에는 내 떠나가리.






  歇馬坐松根       松江在眼底



  幽樓計己定       歲晩吾將去






  나라를 위하여 한참 일하다가 이제 멈추어 잠시 은자로서 살게 되었다. 고향의 송강 물은 눈 아래 있다. 이미 숨어사는 계획도 세워 놓았다. 조금만 조용히 살자. 연말에는 내 다시 조정으로 들어가리.



  이 시 또한 낙향 초기에 지은 시로 생각된다. 송강의 자신만만함이 시에서 보인다.






항시 원하기를 강물에 노는 물고기 되어



 깊은 물에서 자맥질하고자 하네.



 가을에는 못 사이서 꿈을 꾸고



 어릿어릿하다가 천천히 생기 찾아가리.



 



 常願化爲魚     潛於深水底



 秋來夢澤間     圉圉洋洋去






  이 시 또한 의기양양한 자신감을 보이는 시이다. 자신의 심정을 처음에는 어릿어릿하나 차츰 생기를 찾아가는 물고기에 비유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창평에 내려와 있으나 예전에도 그러하였듯이 조금만 있으면 다시 선조 임금께서 부르실 것이라는 기대감이 가득하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마지막 결구의 ‘어어(圉圉)’와 ‘양양(洋洋)’이다. ‘어어(圉圉)’는 물고기가 몸이 괴로워서 어릿어릿 하는 모양을 말하고, 어릿어릿하다는 뜻은 생기 없이 움직인다는 말이다. ‘양양(洋洋)’은 물고기가 천천히 생기를 띠고 힘차게 꼬리를 흔드는 모양을 가리키는 시어이다.



  이 ‘어어양양(圉圉洋洋)’은 맹자가 그의 제자 만장에게 한 말에서 나온 시어(詩語)이다.






옛날 어떤 사람이 정나라 재상에게 살아 있는 물고기를 선물하였다.



그 재상은 연못지기로 하여금 그 물고기를 연못에 넣어 기르도록 하였다. 하지만 연못지기는 그 물고기를 삶아 먹고 나서 재상에게 복명하기를 ‘처음에 물고기를 놓아주니 어릿어릿하더니 조금 있다가 생기를 찾아 꼬리를 치면서 물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재상은 ‘그가 갈 곳을 갔구나. 제대로 갔어.’ 라고 하였다 한다.   






  송강은 이 ‘어어양양거(圉圉洋洋去)’ 구절을 쓰면서 맹자의 이야기에 나오는 연못지기와 정나라 재상을 생각하였으리라. 그리고 삶아 먹힌 물고기의 처지를 자신으로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 






  이어서 나는 송강정 마루 위 편액에 적힌 사암 박순과 율곡 이이에 대한 송강의 한시와 경기도 고양의 신원에서 습재 권벽에게 쓴 송강의 시를 자세히 읽다가 이 한시들이 송강이 1585년 8월에 창평으로 낙향 할 즈음에 쓴 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송강 정철이 율곡 이이를 그리는 시(詩)인 ‘서호병중억율곡(西湖病中憶栗谷)’부터 감상한다.






 



  서호의 병중에 율곡을 그리다






  병이 들어 열흘이나 강가에 누었더니



  하늘에 찬 서릿발에  나무숲도 처량하구나.



  가을 달은 유난히 강물에 밝게 비치고



  저녁 구름 높이 떠 옥봉 조차 쓸쓸하구나.






  하염없는 옛 감회에  눈물 자주 씻으며



  그대를 그리는 마음 홀로 난간에 기대었네.



  날아드는 저 갈매기는 고금의 일 모르건만



  요즘은 쓰라린 이 심사를 아는 듯도 하구나.



 



   西湖病中憶栗谷   






   經旬一疾臥江干    天宇淸霜萬木殘    



   秋月逈添江水白    暮雲高幷玉峯寒    



   自然感舊頻揮涕    爲是懷人獨倚闌    



   霞鶩未應今古異    此來贏得客心酸   



          



  송강은 병이 나서 사대문 밖의 마포의 한강변 서호에서 열흘이나 앓아누웠다. 병으로 눕고 보니 작년(1584년)에 죽은 율곡이 너무나 생각난다. 율곡이 지금 살아 있다면 나는 지금 쓸쓸하지 않을 것인데. 조정에서 곤경에 덜 처하였을 것인데. 요즘의 쓰라린 내 신세를 생각하니 옛날 추억에 눈물이 절로 난다.






  율곡 이이(1536-1584).



  조선조 최고의 학자요 정치가. 우리나라 5천원 권 화폐에 나오는 인물로서 왜란을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사람이며,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도 그에 못지않게 유명하다. 율곡과 송강의 만남은 21세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강의 친구 이회참의 소개로 둘은 서울에서 만났다 한다. 최인호의 소설 유림 5권을 보면, 율곡은 23세 때 도산으로 퇴계 이황을 만나러 갔고 그해 겨울에 과거 시험에서 <천도책>을 지어 장원급제를 하였는데 이 때 송강 정철이 율곡의 장원급제를 축하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최인호는 이 책에서 ‘송강은 율곡과는 당대 제일의 문장가를 다루던 호적수였으나 뛰어난 정치적 영향을 펼쳐보았던 율곡과는 달리 평생을 가사문학에만 매어 달렸던 풍류시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율곡은 송강이 조정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항상 감싸주고 도와준다. 그런 율곡이 1584년 1월에 49세의 나이로 죽자 송강의 슬픔은 너무 컸다.  송강은  이렇게 3수의 만사를 쓴다.






 율곡의 만사 3수






  물 위로 솟은 연꽃 볼수록 천연하니



  수 백 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빼어난 기운이리.



  하늘이 이 나라에 끊어진 학문을 전하려고



  이 사람을 낳아서 앞 성현을 잇게 했나니



  마음 속엔 환중의 묘수가 넉넉히 있고



  눈 아래엔 어려운 일 전혀 없었네.



  어느 곳에서 왔다가 어느 곳으로 가는가.



  이제 서로 이별하니 어느 때 돌아올까.



 





    挽栗谷 三首     






    芙蕖出水看天然     間氣難逢數百年    



    天欲我東傳絶學     人生之子紹前賢    



    心中剩有環中妙     目下都無刃下全    



    何處得來何處去     此時相別幾時旋






  첫 수에서 송강은 율곡이 위대한 성현임을 칭송하고 있다. 먼저 송강은 율곡을 물위에 솟아오르는 연꽃으로 비유하고 있다. 주돈이의 ‘애련설’에 나오는 것처럼 연꽃은 군자의 꽃이다. 또한 송강은 율곡을 수백 년에 한번 날까 말까한 인물이라고 칭송한다. 율곡이 자유자재하여 융통한 환중의 묘수가 넉넉히 있는 사람(환중은 <장자> 제물론의 ‘지도리(도추: 이것과 저것의 상대적 대립관계를 넘어서는 경지)이기에 회전의 중심에서 무한한 변화에 대응한다(樞始得其環中以應無窮)’ 는 글귀에서 나오는 말이다.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도추, 추는 문짝이 열리고 닫히고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동인과 서인의 분쟁 조정자로 표현하고 있다.






  이어서 송강은 율곡이 사물을 바라보는 눈은 마치 포정이 소를 잡듯이 도의 길, 신기에 가깝다고 표현하고 있다. 인하전(刃下全)은 칼날 아래 소가 없다는 뜻으로서, <장자> 양생 편에는 포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백정인 포정은 비천한 신분이지만 그의 칼 쓰는 솜씨는 도에 가까웠다. 포정이 문혜군(양나라 혜왕)을 위하여 소를 잡는데 손을 놀리는 것이나 칼 질 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상림의 춤(은나라 탕왕이 상림이라는 곳에서 기우제를 올릴 때 춘 춤)에 맞고 경수의 장단(요 임금때의 음악이라고 전해지는 함지곡의 한 악장)에도 맞았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기술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가 있단 말인가?’



문혜군이 포정에게 묻는다.






  포정은 칼을 놓고 대답한다. ‘ 제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도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3년이 지나자 소의 전체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마음으로 소를 대할 뿐 눈으로 보는 일은 없습니다. 감각은 멈추고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입니다.  (중략)



훌륭한 포정은  1년에 한번 칼을 바꿉니다. 살을 베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포정은 한 달에 한번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19년 동안 이 칼 하나로 소를 수천마리나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칼날은 마치 숫돌에 갈려 나온 것 같습니다. (중략)






문혜군은 “ 훌륭하구나. 나는 오늘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생명을 북돋음)이 무엇인지를 터득했노라.’ 고 감탄하였다.






  이렇듯 송강은 율곡을 성현의 반열에 올려놓고 칭송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율곡을 영영 이별하게 되었으니 정말 슬프다.






이어서 만사 제2수를 보자.



 



 소학이란 책에서 성리를 깨쳤으니



 성현의 자질이 이미 삼분이나 있었네.



 과거(科擧) 길이 어찌 공명(功名)만의 일이리오.



 글월은 도의(道義)의 근원 아님이 없었네.



 선동(仙洞)에는 용(龍)과 사(麝)의 흔적 가득하고



 석담(石潭)엔  물구름 자취 잠겼네라.



 황천에서도 슬픔은 다함없나니



 임금님의  은혜를 아직 갚지 못하여.



     



  小學書中悟性存    聖賢資質已三分    



  科程豈是功名事    翰墨無非道義源    



  仙洞漫留龍麝跡    石潭空鎖水雲痕    



  泉臺想有無窮痛    未報吾君不世恩    






  소학이란 책에서 성리를 깨치고 성현 자질이 충분한 이율곡. 그가 과거를 본 것은 자신의 공명만을 위함이 아니라 이 땅에 도의를 깨우치려 함이다. 신선이 사는 곳에는 용과 사향노루의 흔적이 가득하고 석담에는 물구름 자취 잠기었다. 죽어서도 슬픔이 가득하니 임금님의 은혜를 아직 갚지 못하여서이다. 송강은 율곡의 만사에서 율곡이 선조  임금에 대한 은혜를 다하지 못한 아쉬움을 적고 있다.



이제 마지막 제3수이다.






 나 보다 먼저 왔다가 또한 먼저 가니



 죽고 사는 것을  조금도 주선하지 못하는가.



 진헐대 가의 달을 따르고져



 마침 비로봉 위에 신선이 되었을테니.



 천겁이 비록 재 되어도 그대를 얻지 못하니



 구원에 가게 되면 다시 그대를 보려나.



 아양곡 알아들을 이 없으니



 종자기위해 거문고 줄 끊을 수 밖에.






   先我而來去亦先     死生何不少周旋    



   欲從眞歇臺邊月     會作毗盧頂上仙    



   千劫縱灰難得子     九原如作更逢賢    



   無人解聽峨洋趣     却爲鍾期一斷絃






  율곡은 죽어서 아마 신선이 되었을 것이다. 천겁이 재가 되어도 얻지 못할 사람 율곡, 당신을 나, 송강은 이제 황천에나 가서 보려나.  (여기에서 구원(九原)은 구천 또는 황천을 말하는데  중국 춘추시대 때 진나라 경대부의 묘지를 구원이라 하였는데 이 말이 ‘저 세상’의 범칭이 되었다.  천겁종재(千劫縱灰)의 ‘천겁’은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수많은 시간이다. 이 천겁이라는 시간 개념이 ‘재’라는 물질로 비유되었다.)






  마지막으로 송강은 율곡과의 관계를 백아와 종자기에 비유한다. 이제 아양곡을 들어줄 종자기가 없으니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아양곡(峨洋曲)은 이전에도 설명한 바 있듯이 백아가 거문고로 산수곡을 타니 종자기가 듣고서 ‘ 산 좋고 물 좋다(山峨峨水洋洋)’ 이라 하였다는 곡조이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었다.






  이 얼마나 애절한 추모인가. 이 송강의 만사를 읽고 있으니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50대 중반인 필자도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친구들이 몇 명이 되지만 이토록 애절하게 만사를 쓰고 심심한 조의를 표하지는 못하였으니. 그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정도의 조의 표시 밖에 못 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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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광정책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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