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문학기행

제5장 송강은 지금도 흐르는 데 - 송강정에서(5)

김세곤 부서명 07.03.27 5448

송강은 지금도 흐르는 데 - 송강정에서(5)






  사미인곡 비 앞에서






  이제 나는 송강정 마루에서 내려 와서 안쪽 뜰로 간다. 거기에는 <송강 정선생 시비(詩碑)>가 있다. 이 시비는 1955년에 송강정을 다시 고치면서 세운 것인데 거기에는 <사미인곡> 전문이 적혀 있다. 비(碑)가 워낙 커서 지금은 자연경관을 해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1955년 당시에는 송강문학의 백미인 <사미인곡>을 널리 알리는 뜻에서 대단한 정성으로 만들었으리라. 1955년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하고 힘든 때였는가. 






 



  고등학교 시절 고전시간에 배운 바 있는 <사미인곡>은 대학 입학시험에도 잘 나오는 우리나라 고전중의 고전이다. <사미인곡>은 창평에 낙향한 송강이 한양에 계신 선조 임금을 사모하는 심정을 한 여인의 목소리로 읊은 사모곡이다. 사랑하는 임과 이별하고 홀로 사는 여인이 임을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사미인곡(思美人曲)>은 제목 그대로 미인(美人)을 사모하는 곡이다.  송강 입장에서는 미인이란 선조 임금을 말한다. 그런데 이 미인은 중국의 <시경(詩經)>에도, 초나라 굴원이 쓴 <초사>의 ‘이소’에도 나오며, <초사>의 ‘사미인(思美人)’ 시 제목이기도 하다. 초나라 임금 회왕을 사모하는 <초사>의 ‘사미인’ 시 한 대목을 보기로 하자.






사미인(思美人)






미인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닦으며 우두커니 바라보네. 중매가 끊기고 길이 막혀서 말을 맺어 전할 수 없구나. 충정한 마음속에 근심과 원망으로 차 있으니 맺힌 마음 표현하지 못하겠네.






  그런데  송강은 중국의 ‘사미인’ 시 보다 훨씬 애절하게 독수공방하는 한 많은 여인의 심정으로 선조 임금에게 충성하고자 하는 마음을 노래하였다. 이렇게 송강이 사미인곡을 쓴 배경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 그냥 이 가사를 읊으면 이 가사는 버림받은 한 여인이 사랑하는 연인을 끝까지 못 잊어 하는 사모곡이다.



  



  사미인곡의 줄거리는 광한전에서 하계(下界)로 내려온 한 많은 여인이 봄에는 매화, 여름에는 비단 옷, 가을에는 달빛, 겨울에는 햇볕을 그리운 임에게 정성으로 바친다. 그러나 여인은 결국 살아서는 임의 곁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차라리 죽어서 범나비가 되어 꽃향기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기겠다고 읊는다. 그리고 임이 나 인줄 모르셔도 내 임 좇으려 하노라고 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한다. 일편단심 연군지정(一片丹心 戀君之情)이요, 일편단심 민들레이다.



 



  자, 그러면 이 비에 적힌 <사미인곡>을 자세히 감상하여 보자. (이 시비(詩碑)는 그냥 읽기가 어려워 현대어를 약간 가미하였다. 이 사미인곡 감상에는 박준규, 최한선이 지은 <미인곡의 산실, 송강정>책을 많이 참고하였다.)






사미인곡 






이 몸 삼기실 제       님을조차 삼기시니



한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나 하나 졈어있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 노여 업다



평생에 원하요대       한데 녜자 하였더니



늙거사 므삼 일로      외오 두고 그리는고.



엊그제 임을 모셔      광한전에  올랐더니



그 더대 어찌하여      하계(下界)에 내려오니



올 적에 빗은 머리     얽힌 지 삼(三)년이라






  이 몸이 생겨날 때에 임을 좇아 태어났으니 이는 한 평생 연분이오, 하늘도 다 아는 일이다. 그래서 백년해로 하고 평생 함께 살자 하였는데 늙어서 무슨 일로 홀로 떨어져 있으면서 그리워만 하는고. 송강은 선조 임금과 천생연분이라서 평생 임금을 모시면서 함께 지내자고 하였는데 나이 들어 임금과 이별하여 홀로 천리 밖 창평에 있다. 그리고 임금과 떨어져 지낸지가 3년이다. 이 삼년이라는 어구로 보아 이 가사는 송강이 창평에 내려 온지 3년이 지난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송강의 아들 정홍명은 사미인곡이 만들어진 시기를 1587년이나 1588년에 지어진 것으로 술회하고 있다.)






연지분 있지마는      눌 위하여 고이할꼬



마음에 맺힌 실음     첩첩히 쌓여있어



짓느니 한숨이요      디나니  눈물이라






  연지분 있지마는 임 없이 혼자 있으니 얼굴을 곱게 할 필요도 없다. 마음에 맺힌 시름이 가득히 쌓여 있어 여인은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임과 이별한 여인의 자탄. 세상 살기가 너무 재미가 없다.






인생은 유한한데      시름도 그지없다.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하는고야



염량이 대물아라      가는 듯 고려오니



듣거니 보거니        느낄 일도 하도할샤






  끝없는 근심 속에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지나간다. 더위와 추위가 가는 듯 다시 오니 듣고 보고 느끼는 일이 많기도 많다. “염량이 때를 알아 가는 듯 다시 오니” 구절은 다음에 펼쳐질 사계절 이야기를 미리 알리는 전주곡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보니 충북 진천에 있는 정송강사가 생각난다. 작년에 가 본 정송강사의 송강가사비에 적혀 있는 사미인곡 글귀가 바로 이 구절이었다.






이제 사미인곡은 춘하추동, 사계절로 접어든다.






동풍이 건듯 불어         적설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근 매화         두세가지 피어세라.



가뜩 냉담한데            암향은 므스일고



황혼에 달이 조차         벼마태  비취니



느끼는 듯 반기는 듯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 꺾어내어         임 계신데 보내오져.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너기실고






  봄바람이 잠깐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어 있다. 지조와 절개의 매화, 2월에 피는 매화는 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향기 그윽한 매화는 황혼의 달빛 아래 비추인다. 저 매화를 꺾어서 임에게 보내고 싶다. 임은 그 매화를 보고 어떻게 여기실까. 이제 계절은 여름으로 바뀐다.    






꽃 지고 새 잎 나니        녹음이 깔렸는데



나위 적막하고             수막이 비어 있다.



부용(芙蓉)을 걷어 놓고    공작을 둘러 두니



가뜩 시름 한데            날은 어찌 기돗던고.






  꽃이 지고 새 잎이 돋아나서 녹음이 깔렸는데 임 없는 빈 방에는 비단 휘장이 쓸쓸하고 자수 장막이 비어 있다. 연꽃 병풍을 걷어 놓고 공작 병풍을 둘러두었는데 가뜩이나 시름도 많은데 여름날은 길고 길다.






  부용(연꽃) 병풍은 옛날 전쟁 중에 흩어졌던 남녀가 연꽃 병풍의 인연으로 다시 상봉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는 병풍이다. 여인은 이 병풍을 쳐 놓았으나 임이 오시지 않자 이제는 공작병풍으로 바꾼다. 공작병풍은 중국 당나라 두황후의 아버지가 공작병풍을 쳐두고 누구든지 병풍의 공작 눈을 쏘아 맞히면 그의 딸과 가연을 맺게 하겠다고 하여 결혼을 점치던 고사가 있는 병풍이다.






  혼자 공방살이하는 여인이 웬 호사스럽게 병풍을 치고 사는가 하는 생각도 드나 여인은 행여 임 오실 때를 대비하여 그만큼 방을 정성스레 꾸미고 있다. 그럼에도 임은 오지 않고 여인은 긴긴 여름날 하루하루를 시름으로 보내고 있다.   






원앙금 버혀놓고             오색선 풀어내어



금(金)자에 견화이서        임의 옷 지어내니



수품은 카니와                제도도 가잘시고.



산호(珊瑚)수 지게위에     백옥함(白玉函)에 담아두고



임에게 보내오려             임 계신 데 바라보니



산인가 구름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천리만리  길흘               뉘라서  찾아갈고



니거든  여러보고            날인가 반기실가






  여인은 긴긴 여름날에 임의 옷을 만든다. 원앙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로 꿰맨 비단 옷을 지어 내니 옷의 솜씨도 물론이고 격식도 좋다.이 옷을 임에게 보내려고 산호수 지게 위 백옥함에 담아두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가 구름인가 험하고 험하다. 여인과 임과의 만남에는 장벽도 많고 많다. 이런 천리만리 머나먼 길을 찾아가서 임에게 이 함을 드리고 싶다. 임이 이 백옥함을 열어보고 나인가 반기실까.



 


  이렇게 임의 옷을 지으면서 임을 사모하는 마음은 초나라의 재상 굴원이 쓴 <초사>의 ‘이소’에도 나온다.






마름과 연잎을 다듬어서 저고리를 만들고



부용을 따 모아서 치마를 만들리니,



나의 마음 알아주지 않아도 그만일 뿐



오직 나의 마음 진실하고 꽃답기만 하면 되네.






製芰荷以爲衣兮   集芙蓉以爲裳 



不吾知其亦己兮   苟余情其信芳






  굴원(기원전 339-278)은 초나라 사람으로서 회왕과 양왕 시대에 살았던 정치가이다. 그는 회왕의 신임을 얻어 왕을 보좌하고 국사를 도맡으면서 국빈을 접대하는 등 요즘 같으면 국무총리와 외교부 장관직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조정대신들의 시기를 받아 점차 회왕과 거리가 멀어지면서 결국 추방을 당하고 만다. 당시는 진나라, 제나라 초나라 등 열국들이 서로 다투는 전국시대였다. 그는 회왕에게 제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를 견제할 것을 진언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도리어 진나라는 재사(才士) 장의를 초나라에 파견하여 초나라 귀족들이 회왕을 견제토록 하였다. 회왕은 무능하여 결국 진나라에게 농락을 당하고 제나라와 단교하고 말았다. 그 후 초나라는 고립되어 회왕은 진나라에서 죽고 말았다.






  이어서 즉위한 양왕은 굴원을 더욱 핍박하여 굴원은 다시 추방을 당하고 멀리 양자강 남쪽 강남지방으로 내쫓기는 몸이 되었다. 결국 굴원은 조국 초나라가 망해 가는 것을 알면서도 추방당한 자신의 처지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울분과 비통에 찬 자신의 심경을 노래한 이소 (離騷), 어부사, 사미인등 여러 편의 초사(楚辭)를 남기고 양자강의 지류인 멱라강에 돌을 안고 스스로 몸을 던져 일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때가 음력 5월 5일이다. 이 날은 한국에서는 창포에 머리를 감는 단오 날이다. 중국에서는 이 날에 만두를 빚어 먹고 용선(龍船) 축제를 한다. 이는 굴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한다. (중국의 단오절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자. 중국에서는 단오절(端午節)이 되면 종자라고 하는 만두 비슷한 떡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먹고 댓잎이나 갈잎에 싸서 강과 바다에 던지며 뱃놀이를 하는 행사가 열린다. 원래 이 행사는 비통한 삶을 살다간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의 죽음을 애도하는 초나라 사람들이 죽통(竹筒)에 쌀을 담아 강물에 던져서 교룡(蛟龍)이 그것을 대신 먹고 굴원의 시신은 해치지 말아 달라고 한 연유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굴원의 작품들은 고대 중국 전국시대의 시집인 〈초사(楚辭)〉에 실려 있다. 초사는 양자강 중류지역의 노래로 중국남방 특유의 지방색채가 농후한 새로운 형식의 민간의 노래이다. 초사에 실린 글 중에서 대표작이 굴원의 ‘이소(離騷)’이다. ‘슬픔을 만나 떠나다’는 뜻의 시름의 노래(이(離)는 이별하여 떠난다는 뜻의 한자이고 소(騷)는 근심의 뜻인 한자이다) ‘이소(離騷)’는 충성스런 굴원이 간신들의 모함으로 임금으로부터 의심을 받아 근심이 생기고, 임금과 이별하면서 결국은 죽기를 작정한다는 굴원의 처지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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