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문학기행

제3장 그림자도 쉬고 있는 식영정에서(2)

김세곤 부서명 06.12.19 5530

제3장 그림자도 쉬고 있는 식영정(息影亭)에서(2) 






  식영정은 정면2칸 측면 2칸인 팔각집으로서 방이 하나 있고 널찍한 마루가 있는데 마루는 두 군데로 되어 있다. 나는 신발을 벗고서 정자 마루에 오른다. 마루 위 벽에는 여러 개의 편액이 붙어 있다. 한 쪽 마루 벽 위에는 식영정이라고 써진 전서 글씨와 석천 임억령의 <식영정기息影亭記>와 식영정 20영 한시 편액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송강의 식영정 잡영 10수 한시도 붙어있다. 다른 쪽 마루 벽에는 고경명과 김성원의 식영정 20영 한시 편액이 있다. 



 



 



  



  나는 석천 임억령이 쓴 <식영정기>를 자세히 살펴본다. <식영정기>는 임억령이 정자 이름을 식영정으로 이름 붙인 내역을 적은 글이다. 여기에는 서하당 김성원과 그의 장인 석천 임억령 사이에 오고 간 이야기가 적혀 있다. <식영정기>는 “金君剛叔吾友也 乃於蒼溪之上寒松之下  得一麓構小亭 ” 로 시작된다.    






김군 강숙(剛叔: 김성원의 자)은 나의 친구이다.  창계의  위 쪽 우거진 솔숲 아래의 한 기슭을 얻어, 조그마한 정자를 지었다. (중략) 이 정자를 나에게 휴식할 곳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숙이 정자 이름을 지어 주기를  나에게 청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그대는 장주(莊周 ; 장자의 이름)의 말을 들은 일이 있는가? 장주가 말하기를, 옛날에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죽을힘을 다하여 달아났다. 그런데 그 그림자는 사람이 빨리 달아나면 빨리 쫓아오고, 천천히 달아나면 천천히 쫓아와서 끝끝내 뒤만 쫓아다니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너무나  다급한 김에 나무 그늘 아래로 달아났더니 그림자가 문득 사라져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림자는 언제나 그 본형을 따라 다니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꾸부리면 저도 꾸부리고 사람이 쳐다보면 그림자도 쳐다본다. 그뿐이랴, 사람의 행동에 따라 그림자도 똑같이 행동한다. 그늘진 데나 밤에는 사라지고, 밝은 데나 낮이면 생겨나는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처신하는 것도 이 이치와 똑같은 것이다. 옛 말에 꿈에 본 환상과 물에 비친 그림자라는 말이 있지 아니한가. 정말 덧없고 무상한 것이 인생이다. 사람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겨났으므로 조물주가 사람을 희롱하는 것이 어찌 본형과 그림자의 관계에만 국한하겠는가?



 그림자가 천 번 바뀐다고 치자. 이것은 본형의 바뀜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생활 철학이 천 번 바뀌었다고 치자. 이것도 자연 법칙의 인과응보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언제나 자연 법칙에 따라 충실하게 행동할 뿐, 자연 법칙 자체에 간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략)






 강숙이 말하기를 사람과 그림자의 관계는 그렇다고 칩시다. 그것이야 자연의 법칙이니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선생의 경우는 굴신이 모두 자신이 선택하였을 뿐, 세상에서 버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중략). 내가 이 외진 두메로 들어온 것도 꼭 한갓 그림자를 없애려고만 한 것이 아니다. 내가 시원하게 바람을 타고, 조화옹과 함께 어울리어 끝없는 거친 들에서 노니는 것이다. 내가 죽치고 그림자를 없애고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으로서는 흉내도 내지 못하고 우러러보지도 못할 것이니, 그러니 ‘그림자도 쉬고 있다’는 뜻의 식영이라고 이름 짓는 것이 좋지 아니하냐. 강숙이 말하기를, ‘이제야 비로소 선생의 뜻을 알겠습니다. 청하옵나니 그 말씀을 바탕으로 기 記를 써 주십시오.’ 하므로 그 청에 응하였다.






 계해 7월 일



 하의도인 荷衣道人 쓰다.






  이 글을 보면  ‘그림자도 쉬고 있는 정자’(식영정)란 이름은 단지 서정적인 뜻 뿐만 아니라 엄청나고 호방하고 무애한 경지를 가리키는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이 식영정이란 이름에는 은둔과 조화와 순리의 동양사상, 다시 말하면 노자와 장자의 자연론이 담겨 있다.






  한편 <식영정기> 말미에는  ‘계해 7월 일 하의도인 쓰다.’라고 적혀 있다. 이 계해년(1563)은 송순이 식영정 시를 쓴 계해년과 같다. 여기에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서하당유고>에 의하면 서하당과 식영정이 1560년에 지어진 것으로 되어 있는데 혹시 식영정은 1563년에 지어진 것이 아닐까. 서하당과 식영정이 동시에 1560년에 지어졌다고 하는 담양군 홈페이지의 설명이 맞겠지만, 서하당은 경신년(1560)에 지어지고, 식영정은 계해년(1563)에 지어진 것이 아닐까. 아무튼 이에 대한 고증이 다시 한 번 필요함을 느낀다.






  나는 이어서 <식영정기>옆에 붙어 있는 석천의 <식영정 20영> 현판과 송강의 <식영정 잡영10수> 편액을  본다. <식영정 20영>은 식영정과 성산 근처의 이름난 20가지 풍광을 시로 쓴 것이다. 그것은 서석한운(瑞石閑雲), 창계백파(蒼溪白波), 벽오양월(碧梧凉月), 조대쌍송(釣臺雙松), 환벽영추(환벽영추), 노자암(鰲伸巖), 자미탄(紫薇灘), 도화경(桃花徑), 부용당(芙蓉塘), 선유동(仙遊洞)등 20개로서 석천 임억령이 먼저 시를 짓고 서하당 김성원,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이 그 시를 20수씩 차운하여 도합 80수가 전해진다.






  송강은 석천 임억령으로부터 다양하고 화려하며 낭만적인 한시의 시풍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나 송강과 같이 동문 수학한 서하당 김성원이 석천의 장인이니 송강은 석천과 각별한 사이였을 것이다. 나는 석천과 송강과의 관계를 알아보고자 석천과 송강의 시 중에서 ‘벽오양월’과 ‘선유동’에 대하여 감상한다. 






  먼저 벽오양월(벽오동 나무에 비치는 서늘한 달)이라는 5언4구 한시이다.  






(1)



가을 산이 시원한 달을 토해 내어



한 밤중에 뜰에 서 있는  벽오동나무에 걸렸네.



봉황은 어느 때에나 오려는가.



나는 지금 천명이 다해가는데.






 碧梧凉月






秋山吐凉月       中夜掛庭梧



鳳鳥何時至       吾今命矣夫









(2)



 선생의 마음은 봉황을  품었는데



 달은  벽오동나무 가지 끝에 걸렸구나.



 백발이 가을 거울 속에 가득하니



 쇠잔한 얼굴은 이제 대장부가 아니구나.



  



 碧梧凉月 






 人懷五色羽        月掛一枝梧 



 白髮滿秋鏡        衰容非壯夫   






  (1)의 시는 석천이 쓴 것이오. (2)는 송강의 시이다. 이 시의 운은 ‘오梧와 부 夫’이고 두 시 모두 벽오동나무와 봉황새가  단골로 나온다.






  석천은 이런 심정으로 이 시를 쓰고 있다. 






“한밤중에 벽오동나무에 걸려 있는 가을 달을 보니 내가 이 세상에서 살 날이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봉황은 어느 때 에 오시려나. 성군은 아직 오지 않는다. 태평성대를 이끌 임금이여, 나 살아 있을 때 오소서.”






  송강은 이런 생각으로  석천의 시에 화답한다.






 “선생께서는 마음은 아직도 봉황을 품었는데 성성한 백발이 가을 거울 속에 가득합니다. 비록 얼굴은 쇠잔하시나 마음은 봉황을 기다리는 마음이시니 아직도 청춘이십니다. 존경합니다. 선생님, 오래 오래사세요.”



 



  다음은 선유동(신선들이 사는 동네)에 관한 시를 감상하여 보자.






먼저 석천의 시이다. 






선유동






 창계 시내로 이어진 동천(洞天)은



 밝은 달 맑은 바람 속이로구나.



 때마침 깃털 옷을 입은 늙은이는



 어느  도사인지 알 수가 없네.






  仙遊洞






  蒼溪小洞天      明月淸風裏



  時下羽衣翁      不知何道士






  “신선이 유람하는 동천은 청풍명월 속인데 거기에 깃털 입은 노인이 있다. 누구일까. 나일까? 알 수가 없네. “ 이것이 석천의 마음이다.






  다음은 송강의 선유동 시이다.






그 어느 해에 바다위의 신선이



구름 서린 산속에 깃드셨던고.



남긴 자취 어루만지며  슬퍼합니다.



어느덧 머리 하얀 문하의 제자가.






何年海上仙     樓此雲山襄



怊悵撫遺踪     白頭門下士



 



  그 어느 해에 바닷가의 신선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구름 산에서 누워 있다. 그 신선의 유품과 자취를 어루만지면서 이제는 머리하얀 제자가 슬퍼한다. 그런데 송강집에는 ‘해상선(海上仙)은 하서를 말한다.’고 적혀 있느나 이 해상선이 하서 김인후라고 보기에는 어색함이 있다. 바닷가의 신선이라면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어야 하는 데 하서가 산 곳은 산중 山中인 장성이다. 나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자료를 다시 찾은 결과 김성원의 <서하당유고>에 ‘해상선은 석천을 말한다.’고 표현되어 있다. 석천이 해남출신이고 마지막 생을 마친 곳도 해남이며, 해남은 남쪽 바닷가임을 감안할 때 이 시의 신선은 석천 임억령이 틀림없다. 더구나 식영정 20수는 석천과 송강, 서하당, 제봉이 서로 화답하는 시이므로 하서가 등장하는 것도 어색하다. 이 시는 1568년에 세상을 떠난 석천 임억령를 기리는 시이다. 머리 하얀 제자는 바로 송강 자신을 가리키며 이 글로 보아 송강이 아마 40대 이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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