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문학기행

제3장 그림자도 쉬고 있는 식영정에서 (4)

김세곤 부서명 07.01.02 4731

그림자도 쉬고 있는 식영정(息影亭)에서 (4)



-성산별곡비에서






  이어서 나는 <성산별곡비>의 뒷면을 본다. 이 비의 뒷면에는 ‘송강 정선생의 약력과 창평’ 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여기에는 송강이 창평에 내려온 내역, 문화 류씨와 결혼한 일, 사촌 김윤제의 도움을 받은 일, 성산에서 가사를 짓는 것 등이 적혀져 있고, 성산별곡도 실은 송강 자신의 풍류와 정취를 노래한 것으로 송강의 멋과 개성이 풍부하게 반영된 작품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자미탄 유지비 앞에서



 



 



  식영정을 구경하고 계단으로 길로 내려와서 나는 길 건너편에 있는 <자미탄 유지비>를 찾았다.  주의 작가  여균수가 쓴 <무등산 둘러보기> 책에서 이 비에 대한 글을 보긴 하였지만 지난번에 왔을 때는 쉽게 찾지를 못했는데  오늘은 그 유지비를 찾은 것이다. 백일홍 피는 여울, 자미탄. 원래 담양군 남면 학선리에서 성산에 이르는 증암천과 오솔길 주변에는 해마다 7월부터 9월까지 100일 동안 진홍색 백일홍 꽃이 만발해 증암천 여울에 비춰졌단다. 그리고 임억령 등 식영정 사선(四仙)이 식영정과 환벽당을 오가며 자미탄을 찬미하는 시가(詩歌)를 읊었던 곳으로 전해져 증암천이 자미탄이라 불러져 왔다.



  그러나 1974년에 광주호 댐 공사로 그 아름다운 절경이 모두 물속에 잠겨 버렸다. 정말 아쉽다.



  이런 아쉬움에 대하여 내 고등학교 동창이고 시인이며 화가인 김재균은 <자미탄을 꿈꾸며>라는 시를 썼다.






어릴 적 꿈속



닫힌 문을 살짝 열고 들어서면



붉은 꽃 술 사이로 하얗게 드러난



흙길이 있었네



나는 터벅이며 산골 속으로 잠겨들었네






지금은 없어져버린



배롱나무 꽃핀 여울



물결위에 산새소리 적셔가며



아마도 어머님이



나를 안고 걷던 길






식영정 앞 절벽아래



길과 내 사이 낭떠러지



백일홍은 또 다시 피어 있을까



풍상을 넘기면서



소나무 그늘 아래 아무리 잠을 청해 보아도



숨막히는 풍경은 만날 수 없네






잊혀지고 버려진



학선리에서 성산에 이르는



길고 긴 여울목 찾아 보고자



시리도록 걸어보는 나의 꿈속에






어머니는 



호수 속에 잠긴 꽃그림자를 밟고



그리움으로 붉게 피어오르시겠네.






  이렇게 시를 쓸 실력이 없는 나는 옛날 식영정 사선(息影亭 四仙)들이 쓴 자미탄 한시나 감상하면서 배롱나무 여울의 흥취를 음미하여 본다.






먼저 석천 임억령의 시이다.






자미탄                 






누가 있어 붓으로 그림 그려 놓았듯이 



여기 산골 물가에 백일홍 심어 놓았나. 



선녀 같은 고운 단장 물아래 비쳤으니 



물고기와 날 새들 놀라 시샘을 하네.    






다음은 김성원의 시이다.






여울 물소리 계속 들리는데               



이름난 백일홍 누가 또 심어 놓았나.   



산 집에서 새롭게 빨아놓은 비단이라   



장사치 길손아 시샘을 하지를 마오.     






고경명의 시도 좋다.






생긴 자태 본디 부귀가 으뜸인데          



어찌 또 때맞추어 여울 가에 심었는고.     



골짜기 언덕엔 붉은 노을 가득하니        



고기잡이들, 시새워볼까 두렵네.            






마지막으로 송강의 시이다.






아름다운 꽃 백일이나 필 수 있기에         



그래서 물가에 심은 거라네                 



봄이 지난 뒤에도 이처럼 피어 있으려니  



봄이여! 이에 시샘을 하지를 마오.         






  이 네 시를 감상하여 보니 네 시 모두 무엇인가가 여울물가에 심어진 백일홍 꽃을 보고 시샘을 하고 있다. 석천의 시에는 물고기와 새들이 시샘을 하고, 서하당은 장사치와 길손이 시샘을 하며, 제봉은 고기잡이 어부들이, 송강의 시에는 봄이 시샘을 한다. 






  한편 이 자미탄 비를 보면서, 나는 몇 주 전에 경기도 고양시 신원동  송강마을 뒷산에서 본 자미화(紫薇花) 시 한수가 적힌 비석을 생각하였다. 그 비가 바로 ‘의기 강아’의 묘비인데, 이 묘비 뒷면에는 송강의 자미화 한시가  적혀져 있다






 


 


강아 (江娥)






송강 정철은 전라도 관찰사로 재임시 남원의 동기(童妓)인 자미를 사랑하자 세상 사람들이 송강의 강자를 따서 강아(江娥)라 불렀다. 송강은 1582년 9월 도승지로 임명되어 강아에게 석별의 시를 지어주고 한양을 떠났다. 



  



자미화    詠 紫薇花






봄빛 가득한 동산에 자미화 곱게 펴                   



그 예쁜 얼굴은 옥비녀보다 곱구나.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말라.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 모두 다 네 모습 사랑하리라.





  그 후 강아는 송강에 대한 연모의 정이 깊어 평안도 강계로 귀양가 위리안치중인 송강을 찾았으나 임진왜란이 나자 선조대왕의 특명으로 송강은 다시 소환되어 1592년 7월 전라. 충청도 지방의 도제찰사로 임명되었다. 강아는 다시 송강을 만나기 위하여 홀홀단신으로 적진을 뚫고 남하하다가 적병에게 붙잡히자 의병장 이량의 권유로 자기 몸을 조국의 제단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적장 소서행장을 유혹, 아군에게 첩보를 제공하여 결국 전세를 역전시켜 평양탈환의 큰 공을 세웠다는 미담이 전한다. 그 후 강아는 소심보살이란 이름으로 입산수도하다가 고양 신원의 송강 묘소를 찾아 한 평생을 마감하였다.



                                       1988.10.20



 



  송강이 전라도 관찰사가 된 것은 1581년 12월이다. 송강은 1581년 6월부터 6개월간 창평에서 세 번째 낙향 생활을 한 이후 전라도 관찰사로 근무하는 데 이때 송강은 동기(童妓) 강아를 만난다. 송강을 못 잊어하던 강아는 1591년에 송강이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주청하였다가 선조의 미움을 사서 평안도 강계에서 유배중이란 말을 듣고 강계로 송강을 찾아 간다.



  월탄 박종화의 소설 “자고 가는 저 구름아” 에 나오는 송강과 강아의 러브스토리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제 나는 성산삼승(星山三勝) 중 마지막인 소쇄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조광조의 제자인 소쇄처사 양산보가 가꾼 대표적인 조선의 원림인 소쇄원으로 송강 정철의 흔적을 찾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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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광정책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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