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문학기행

제4장 대숲 바람부는 소쇄원에서(6)

김세곤 부서명 07.02.13 4655

제4장 대숲 바람 부는 소쇄원에서(6)







  한편 제월당 마루에는 송순 , 양응정, 기대승의 한시가 같이 있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시들은 모두 소쇄옹 양산보에 대한 만시이다. 먼저  송순의 시부터 살펴보자. (송순과 양산보는 외가로 친척이다. 양산보의 어머니가 송순의 고모이니 상당히 가까운 외척이다. 그런데 나이는 송순이 양산보보다 열 살 이상 많아 이종형이 된다.) 



 






 



보배로운 임천은 옛 구름에 잠겨 있어



길 잃으니 어느 곳에서 자네를 찾으랴



사가(謝家)의 뜨락엔 난초 바야흐로 가득하고



증씨(曾氏)의 집 앞엔 저녁햇살 어스레한데



돌 뚫는 바위 시냇물만 홀로 목이 메이고



담장의 붉은 꽃나무는 누굴 위하여 향내를 내는 가



옛 동산길이 새로운 길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늙은 나무에서 우는 소쩍새 소리 차마듣지 못하네.






外弟瀟灑處士輓






珍重林泉鎖舊雲      路迷何處覓微君



謝家庭畔蘭方郁      曾氏堂前日欲曛



穿石巖溪空自咽      引墻花木爲誰芬



故園永與新阡隔      老樹啼禽不忍聞






  한편 조광조의 시신을 수습했던 학포 양팽손의 아들인 송천 양응정의 한시는 현판 한가운데에 있다. (양산보와 양응정도 친척 관계이다. 두 사람은 같은 제주 양씨로서, 소쇄처사  양산보가 양응정의 큰 집 형이다. )






천인이 해중산에서 솟아났으니



무늬가 같은 후손 아롱진 옷을 입네.



정성 높은 자손은 추모하는 마음 기울이고



학식 높은 선배는 따라 받드네.



어진이의 덕을 입으니 복 있는 백성



용사를 만나니 수명이 인색해



막막한 구천에서 응당 통곡할 것이니



북풍에 원초리 풀도 얼굴 수그리네.






天人湧出海中山    符彩雲孫尙被斑



誠篤白華傾慕悅    識高前輩斷追攀



遺賢藪澤民何福    値歲龍蛇壽亦慳



漠漠九原應結痛    北風萱草日摧顔






  아울러 고봉 기대승의 만시도 적혀 있다. 이 시는 원래 “만모인 5언 4운 5수(挽某人 五言四韻五首)”이다. 양산보라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고 그냥 모인이라고 쓴 한시이다. 기대승은 소쇄처사 양산보에 대한 만시를 쓰면서도 왜 그냥 “모인(아무개)”이라고 하였을까. 이는 고봉이 세상에 드러나기 싫어하는 소쇄처사의 마음을 가장 잘 읽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연명처럼 은자의 삶을 산 소쇄옹에게 무슨 이름이 필요하였을 것인가.






고봉의 만시는 5수중 4수와 5수가 제월당에 걸려 있다.






바다와 산은 영기를 모으고



하늘과 땅이 서로 일민 逸民을 도왔네.



삼여에 학문을 많이 쌓았고



한 골짝에 또 봄을 간직했었네.



뜻이 멀어 선배를 따르고



말이 깊어 뒷사람을 계시하였네.



처량하게 옥석을 남겼으니



부질없이 방진만 우러르노라






海嶽鍾英氣     乾坤相逸民



三餘多積學     一壑又藏春



意遠追先輩     言深啓後人



凄凉留玉舃     空復仰芳塵






지하로 수문하러 떠나가니



인간의 무채를 어기었구려



존망의 정이 망극도 한데



이승 저승 길이 아득만 하구나



요락한 임당은 그대로 변함 없는데



처량한 장구는 그 모습이 아니네



적계로 멀리 조문을 못하니



동쪽을 바라매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地下修文去      人間舞綵違



存亡情不極      幽顯路猶依



寥落林塘是      凄凉杖屨非



炙鷄乖遠造      東望淚沾衣






  조금 지루하긴 하겠으나,  1,2,3 수도 여기에서 같이 소개한다.






소쇄원 원림이 유벽하고



청진한 지개가 길었네



꽃을 심어 따뜻한 꽃잎이 열리고



물을 끌어 청류가 솟구쳤네



고요하고 가난한 것 싫어 아니하고



한가로이 그대로 늙는 것 걱정하지 않았네



어찌 갑자기 돌아가실  줄 알았으랴



슬프게도 흰 구름만 떠 있네.






瀟灑園林僻    淸眞志槪悠



裁花開煖蘂    引水激淸流



靜與貪非厭    閒仍老不憂



那知遽觀化    怊悵白雲浮






스스로 유취를 탐할 줄 알아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오곤 했네.



명에 편안하여 별경에 숨었고



실의에 빠져 맑은 의표 숙여졌네



한번 취했던 일 도리어 꿈을 이뤘으니



거듭 노니길 다시 마음 먹었었네



야학에 옮긴 것을 수심에 겨워 듣고



슬픈 눈물은 찬 밤에 뿌리노라






自覺耽幽趣   參尋不待招



安排藏異境   落拓偃淸標



一醉還成夢   重遊更作料



愁聞移夜壑   衰涕灑寒宵






초년에는 순유의 업이더니



중년에는 거사의 몸이었네



공명은 죽백에 비었지만



덕의는 향리에 가득하도다



한번 웃자 숨긴 배를 잃어버리니



천추에…… 원문 1자 결 ……나무 새롭네



마음 아파라 기구전에



어찌 다시 이 사람이 있으랴






蚤歲醇儒業   中年居士身



功名虛竹帛   德義滿鄕隣



一笑藏舟失   千秋□樹新 (원문 1자 결)



傷心耆舊傳   那復有斯人



(민족 문화 추진회 인터넷의 고전국역총서 고봉집 한역 자료에서 가져옴)






  소쇄처사 양산보가 별세하였을 때 송강은 22살이었다. 이 소쇄옹의 장례식에는 하서와 면앙정, 석천과 사촌, 고봉, 송천, 제봉, 송강, 서하당 등이 참석하였을 것이고, 하서와 고봉, 그리고 면앙정은 만사를 하였을 것이다. 나이 어린 송강은 만사를 지을 형편도 못 되었지만, 송강은 소쇄옹과 먼 친척이 되는 만큼 그도 장례식에 참석하였으리라 (소쇄옹 행장에는 ‘송강은 소쇄옹을 대할 때 마다 마음속에 상쾌함을 느꼈다’고 적혀 있다. 소쇄옹의 부인이 사촌 김윤제의 누이이고, 송강의 부인이 김윤제의 외손녀이니 송강과 소쇄옹도 먼 친척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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